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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과 업적

청강컴정/교육학개론

by luckey 2009. 4.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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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 스위스 태상, 교성(敎聖)이라 불리며, 교육사상가이자 사랑을 실천한 위대한 교사.

교육의 본질과 목적
인간의 본성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 보았으며, 교육의 목적을 인간의 모든 능력(지적, 신체적, 도덕적인면)을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것으로 여기며, 인간의 정신적 내면력을 정신(Head), 심정(Heart), 기술(Hand)로 구분하여 이들의 조화로운 발달을 교육의 원리로 하였다.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
1. 교육사상
사상적 배경 : 루소의 자연주의, 직관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나, 종교적 심성의 도야와 모성애의 의한 유아기의 교육을 중시한 신인문주의의 주정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1) 인간관
성선설과 인간평등사상 및 발전가능성을 전제로함. 그러나 프랑스혁명이후 그에게 있어 인간은 더이상 선천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니라 모순적이고 분열된 존재로서 자연적, 사회적, 도덕적인 상태를 통해 발달한다고 봄

2) 교육에 대한 정의 : 교육은 사회개혁의 수단이다.

3) 교육목적론 : 인간성의 도야, 인간형성을 통한 사회 개혁, 3H의 조화적 발달

2. 교육의 방법
1) 직관교수의 원리
사물의 교육이 언어보다 선행하여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이 판단과 추리보다 중요함
2) 노작교수의 원리
협의의 의미에서는 작업교수와 수공적 활동에 의하여 교육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고 광의의 의미에서는 신체적 발달을 주로 하는 기술상의 일이라던가 자연을 다루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활동까지도 교육에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3) 생활교육의 원리
20세기 생활교육운동의 기초를 형성. 생활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기의 어머니와의 생활이라고 봄.
4) 방법의 원리
인간성의 자기발전과정의 3단계 자연상태, 사회상태, 도덕적상태를 거침

페스탈로치의 합자연의 원리(Natorp의 분석)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연에 따르라" 고 한 '합자연의 원리'를 교육의 기본원리로 삼음
1) 자발성의 원리
교육은 아동의 능력을 내부로부터 개발시키는데 있다는 원리로써 일정한 형식을 외부에서 가하려는 종래적 교육관에 반대하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2) 방법의 원리
모든 교육활동이 심성발전의 법칙에 ㄸ르는 인간성의 전개, 즉 인간성의 전개단계에 따라서 교육이 행해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3) 직관의 원리
직관이란 수동적인 사물의 인상을 얻는다는 의미와 정신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사물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작용을 뜻한다. 직관의 기본요소로써 수(數),형(形), 어(語)를 들고 있으며, 이 3요소가 모든 인식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이다.
4) 조화적 발전의 원리
도덕적 기능을 중심으로 3H의 조화적 발전을 교육의 목적으로 함.
5) 사회적 원리
개성의 존중과 함께 사회생활의 교육적 의의를 강조하고, 특히 모자간의 사랑을 덕육의 근저로 삼는 사회적 원리를 강요하고 있다.

현대 교육에 미친 영향
1) 자연주의 교육의 실용화
진보주의 교육과 공통점을 지는 그의 자연주의 교육은 현대의 심리주의, 과학기술주의 교육의 교수법으로 발전하였다.
2) 아동중심주의 교육의 정착
아동발달의 초기단계를 중시. 아동과 접해 있는 환경을 중요시하고 아동의 자발적 활동과 관찰, 체험에 의한 창조적 활동을 강조하여 진보주의 교육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3) 현대교육원리의 확산
자발성의 원리는 자기활동, 노작활동, 목적의식 있는 활동의 직접 경험활동을 유도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외계의 사물을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적 인식에서 사고작용을 거쳐 개념형성을 하는 직관의 원리는 현대의 시청각 교육으로 발전하였다.
통합성의 원리는 아동을 전면적, 인지적으로 발달된 인격체로 보는 전인격적 통합으로 이놀과 실제의 통합을 바탕으로 하는 시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개인차에 의한 지도원리를 통한 개별화의 원리와 지역사회의 특성과 자연법 방법에 일치되는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화의 원리를 교육과 연관시켰으며, 진보와 개혁을 통하여 민주주의 발전과 현대산업사회에 기여하였다.

페스탈로치의 생애와 활동
청소년시대
페스탈로치는 1746년 1월 1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목사가 되기 위해 처음에는 신학을 공부하다가 빈민구제에 뜻이 있어 다음에는 취리히 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중, 애국단체에 소속되어 사회운동에 가담하였으며, 뮤리겐에 약간의 토지를 사고, 1763년 같은 단체의 단원이던 안나와 결혼하였다. 이때 페스탈로치의 나이는 23세이고 안나는 31세였다. 건강을 이유로 농사에 종사하던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에밀"을 읽고 교육에 종사할 뜻을 굳혔다.

노이호프시대
자신이 구입한 땅을 Neuhof라 이름 짓고 농사, 방직사업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771년 빈민아들에게 노작교육을 실시하였으나, 2년 후에 경영의 실패로 문을 닫았다. 그 후 18년간 사색과 저술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그의 교육사상을 요약한 <숨은이의 저녁때>와 그의 교육사상 중 인간계발과 사회개조를 설명한 교육소설 <린할트와 겔르루트>를 저술하였다.

슈탄쯔시대
1798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스위스로 밀려와 그 전쟁으로 많은 고아가 생겼다.
슈탄쯔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관리자로서 80여명의 고아들에게 그의 독특한 노작교육을 실시하여 많은 효과를 거두었으나, 6개월 후에 그곳이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어 폐쇄되었다.

부르크도르프시대
브루크도르프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사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나, 교장의 배척으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그의 교육적 소신을 폈다. 당국의 찬사를 받게되고 부르크도르프성을 대여 받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교육을 조직적으로 실험하게 되어 일대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 때 그의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명시한 <직관의 ABC>,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편지>, <게루트르트는 그의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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